책소개
오랫동안 집을 나가 있었던 딸이 갑자기 만삭의 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다.
어머니는 쓸데없는 잡담을 즐기고 다리의 통증 때문에 괴롭다.
아버지는 늘 같은 시간에 끔찍하게 피곤한 모습으로 퇴근한다.
여동생은 여전히 저 아래 노점에 가 시간을 보낸다. 물건들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견고한 틀처럼 전혀 변화가 없던 이 집에 돌아온 딸, 베아테의 뒤를 따라 낯선 청년이 찾아온다.
베아테가 가진 아이의 아버지인 그의 출현은 마치 이 집의 견고한 틀을 부수고 들어온 침입과 같다.
가출했던 딸이 임신을 해서 돌아오고, 뒤를 이어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인 딸의 남자 친구가 찾아온 그날 저녁의 몇 시간, <이름>은 한 가정의 이 짧은 저녁 한때의 풍경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 이외에 특별한 사건은 아무것도 없다.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인물들 사이의 소통 부재다. 타인의 공간에 침입하듯 들어와 오히려 그 공간에 또 하나의 벽을 만들고 있는 그의 행위와 그 벽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전혀 변화가 없는 베아테 식구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기타맨>은 중년의 거리 악사가 들려주는 남성 모놀로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리의 음악가는 수년 전부터 매일 같은 지하도에서 동전을 얻기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그의 곁을 지나가지만, 그의 노래를 관심을 가지고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는 “비어 있음”일지도 모른다. 그 비어 있음은 그에게 충만함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 관계도 끊고자 한다. 자기 삶의 동반자였던 기타의 줄을 끊고 기타와 이별하며 동전을 받던 기타 케이스도 함께 남겨두고 그는 떠난다. 그는 노래하기를 그치고 연주하기를 멈춘다.
<이름>과 <기타맨>은 욘 포세의 전형적인 글쓰기 방식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우리 삶의 주변에서 항상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대부분 이름이 없고 특별한 성격이 없는 단순한 인물들이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상의 갈등과 평범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정신적 번민이 겉으로 드러난다. 여기에서 포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정체성이 분명한 특별한 인간의 유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마치 현미경을 통해 포착한 듯 사람들의 관계는 세밀하게 그려진다. 포세는 말한다. “삶을 조종하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관계들이다.” 그러나 포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관계의 불가능성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단절의 깊이는 어쩌면 포세가 보고 있는 것만큼 클지도 모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단지 그 깊이를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며 실제로 진지하게 그 깊은 공간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200자평
욘 포세는 우리 삶의 현실을 철저하게 압축되고 생략된 언어로 옮긴다. 반복과 축약 가운데 수많은 침묵, 사이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숨긴다. 그의 텍스트가 담고 있는 언어는 그 인물들의 관계가 소통의 불가능을 보여주듯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어느 면에서 인물들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보다는 단지 자신이 거기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말을 하는 듯 보인다.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 그 신호 뒤에 수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그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지은이
욘 포세는 현재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연극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59년 노르웨이의 해안도시 헤우게순(Haugesund)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1975년 베르겐(Bergen)으로 가 그곳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호르달란(Hordaland) 문예창작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포세는 현대의 사회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가족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우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세대 간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말로는 결코 종합적으로 고찰될 수 없는 것, 즉 죄와 실망의 원천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에는 일견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삶의 그림들이 단순한 구조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는 많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며, 항상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 남자(남편), 여자(아내), 소년, 소녀. 여기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할머니, 그리고 때때로 이웃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으며 특별한 고유의 성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항상 단순한, 일반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의 관계는 한눈에 파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경건하게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그 관계가 또한 철저하게 관찰되고 파악될 수 있어서 보편성의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만큼 포세가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현실의 단면은 굵은 윤곽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그림으로 그려지나 그 사이의 여백에는 인간의 삶이 가진 구체적인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만들어내는 의사소통 부재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인간 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원형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포세의 언어는 배우와 연출자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압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문장의 조각들,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하게 구두법 없이 쓰인 그의 텍스트는 해석과 리듬의 모든 힘을 배우와 연출자의 손에 넘겨준다. 포세는 삶의 본질적인 것이 파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리들을 제거한다.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말의 고유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노톤의 문장들, 부분적으로는 스타카토처럼 던져지는 문장들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구조들, 인간의 내적인 심리 구조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응축된 형태로 노출된다. 여기에 포세는 침묵의 순간들을 적절히 이용한다. 인물들의 대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반복 사용되는 ‘사이’의 침묵, 이 행간을 인물들의 말 없는 진실이 넘나든다. 소리와 소리 없음의 독특한 리듬?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통해 포세는 인간의 삶이 가진 진정성은 무엇인지 묻는다.
옮긴이
정민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독문학 박사)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현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이며 드라마투르그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여러 연극인들과 희곡낭독공연회를 결성하여 번역과 낭독 공연을 통해 여러 나라의 동시대 희곡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카바레: 자유와 웃음의 공연예술≫, ≪하이너 뮐러 극작론≫, ≪하이너 뮐러의 연극세계≫(공저),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욕망≫, ≪하이너 뮐러 문학선집≫, ≪하이너 뮐러 평전≫, 욘 포세 희곡집 ≪가을날의 꿈≫, 우르스 비드머의 ≪정상의 개들≫, 볼프강 바우어의 ≪찬란한 오후≫, ≪브레히트 희곡선≫, 독일어 번역인 정진규 시선집 ≪Tanz der Worte (말씀의 춤)≫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 1, 2>, <하이너 뮐러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리고 한국 무대의 “주워온 아이”>, <하이너 뮐러의 산문>, <한국 무대의 하이너 뮐러>, <Zur Rezeption der DDR-Literatur in Südkorea> 등 많은 논문을 썼다. 드라마투르그로 작업한 주요 작품으로는 손정우 연출의 <그림 쓰기>, 백은아 연출의 <찬란한 오후>, <보이첵−마리를 죽인 남자>, 송선호 연출의 <가을날의 꿈>, 홀거 테쉬케 연출의 <서푼짜리 오페라>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이름
기타맨
‘알려지지 않은 것 안으로 들어가기’
-<시대의 연극 (Theater der Zeit)>지와의 인터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청년
죽은 자들 또한 인간이듯
태어나지 않은 애들 또한 인간이니까
인간이 되려면
모든 인간을 생각해야 돼
모든 죽은 자들을
태어나지 않은 모든 자들을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을